면역력과 생체리듬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등의 난치병 환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생체리듬을 이상적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며칠 동안 수면을 줄이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건강한 리듬을 지키지 못하면 면역력이 저하된다. 반대로 이상적인 리듬을 유지하면 난치병도 치료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리듬
우리의 몸은 리듬을 타고 계속 변한다. 신체를 이루고 있는 기관과 골격, 근육은 일정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인체를 작동하는 생리현상은 항상 파동을 타고 움직인다. 이 리듬은 6시간, 8시간 12시간과 1일의 짧은 주기도 있고, 7일 30일 1년의 긴 주기도 있다. 체온과 심박수는 12시간, 24시간, 일 년 주기의 리듬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인체에서 발견된 하루 주기의 리듬은 17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몸은 다양한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대표적인 리듬은 24시간 즉 일주기 리듬이다. 일주기 리듬은 지구의 자전에 맞춰진 변화이다. 이 변화에 맞추는 리듬의 핵심은 바로 수면이다. 수면리듬만 잘 유지하고 하루 7시간 반 정도의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면 건강의 기초는 잡힌다.
그러면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 것이 좋을까. 한의학에선 “자연의 리듬에 따르라”고 설명한다. 병이 나지 않게 미리 막고, 천수를 누리기 위해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변화에 맞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한의학 책 중에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에 여름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겨울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쓰여 있다. 해가 뜨면 양기가 충만해져 활동하는데 알맞고, 해가 떨어지면 음기가 강해져 몸의 움직임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수면의학에선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으로 설명한다. 우리 몸에선 멜라토닌이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분비된다. 멜라토닌의 분비량으로 볼 때엔 11시 전후에 잠자리에 들어, 7시간 조금 넘게 자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다.
수면학자들은 또 인체의 수면리듬을 자연에 맞추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인체의 수면리듬은 24시간이 조금 넘는데 지구는 자전주기 즉 24시간 리듬으로 움직인다. 자연의 리듬과 인체의 고유리듬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생체시계를 끊임없이 조절해 주어야 한다. 생체시계를 다시 맞춰주는 자극을 자이트게버(시간부여자)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햇볕이다.
햇볕이 일주기리듬을 만든다는 록펠러대학의 마이클 영 교수 등 3인의 연구는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고려대 의대의 이헌정 교수(수면센터장)가 “수면의 질을 높이고, 수면리듬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침에 햇빛을 충분히 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논거이다. 아침 30분 정도의 산책이 일주기 리듬 즉 수면리듬의 유지와 회복의 비법인 셈이다.
중요한 수면리듬
수면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 사람은 자는 동안 낮에 활동하면서 쌓인 노폐물을 청소한다. 대표적인 피로회복 호르몬인 성장호르몬과 동화호르몬이 수면 중에 주로 분비된다. 뇌의 피로 회복에 방해가 되는 불면이 치매와도 연관된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상처의 치료와 회복도 수면과 연관이 된다. 리듬이 깨져 나타나는 불면이나 수면부족은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각종 감염병과 염증성 질환의 위험도 높인다. 수면은 대사과정도 조절한다. 잘 때는 대사량이 줄어들고, 깨어 움직일 때는 대사량이 늘어난다. 적절한 수면이 대사활동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조절자가 된다.
현대 사회에선 일찍 잠자리에 들기 힘들고, 수면시간도 6시간 정도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11시 전후에 잠자리에 들어 7시간 반 정도 자야한다는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수명이 짧은 초파리를 늘 빛이 있는 곳에서 키웠는데도 700세대가 넘도록 일주기리듬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인간의 한 세대를 25년이라고 보면 17,500년 동안 그 특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TV나 인터넷 등으로 수면리듬이 흔들린 것은 50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면의 원칙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수면 이외의 리듬
수면이외에 다른 측면의 리듬도 지켜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 생체리듬의 고점과 저점은 몸의 각 기관과 기관계에 따라 다르다. 뇌의 활동은 낮에 최고의 효율을 보이고, 새벽 4시에 가장 떨어진다. 혈압, 체온 근력도 낮에 상승하고 새벽에 최저가 된다. 활력을 높여주는 코르티솔은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는 전혀 분비가 되지 않는다.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은 정오에 가장 많이 분비되고, 저녁에 가장 적어지는 일주기 변화를 보인다.
이 같은 생체시계의 변화를 이용해 약리학에선 약의 투여 시간을 정하기도 한다. 아스피린의 경우 아침에는 위에 부담을 많이 주지만 저녁에 복용하면 위장장애가 적다. 잠기기 전에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심혈관 질환 방지 효과도 좋아서 저녁복용이 원칙이 된다. 항알레르기제, 항암제, 고혈압과 위 십이지장 궤양치료제 등의 경우 시간에 따른 효과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 밝혀져 있다.
일주기리듬을 고려할 때 우리도 낮에는 활동을 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활력을 높여주는 코르티솔이 전혀 분비가 되지 않는 밤 12시부터 4시까지는 몸과 머리를 움직이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생산적인 활동을 위해선 가장 비효율적인 시간이고, 피로를 회복하고 뇌의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데는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식사도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아침을 거르고, 밤늦게 야식을 하는 습관은 생체리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활력을 높이는 리듬을 원활하게 하려면 아침식사가 꼭 필요하다. 반대로 몸이 휴식기에 들어가는 밤 시간에 음식을 먹으면 체중이 쉽게 늘어난다. 우리 몸에서 음식 섭취 시에 체중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시간은 밤 10시 반이다.
생체시계에 따른 인체 기능의 고점과 저점이 언제인가를 잘 알고 그에 맞춰 생활하는 게 삶의 효율을 가장 높이는 비결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이다.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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