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모든 질환을 다 치료하고 싶어하는 욕심장이 입니다. 고쳐드린 분들 보다는 고치지 못한 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이런 질환을 만나면 꼭 치료해 드리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 흔히 말하는 특정질환을 특화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원장입니다. Generalist 보다는 Specialist가 우대받는 세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든 질환을 다 치료한다는 어리석고 욕심많은 사람입니다. 한의학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치료해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의학 공부를 아직도 끊임없이 하면서 몸 전체를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지고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을 때면 “이렇게 살다 죽겠지뭐. 난 이게 옳다고 믿으니까”라고 말합니다.
한의학은 몸의 병만 고치는 의학은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에서 온 병도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내상칠정(內傷七情)이라는 개념은 마음 속의 7가지(喜怒憂思悲恐驚) 감정이 몸에 병을 만든다고 보는 것입니다. 심각한 병들은 대개 마음병을 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만났던 암환자 중에서 마음병이 없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치료방법에도 욕심이 많습니다. 다른 한의사들이 신경쓰지 않던 뜸을 학생 때부터 배우고 연구해 이제는 뜸이라면 누구와도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뜸만 뜨는 것도 아닙니다. 침법에 대한 욕심도 많습니다. 세상에 뜸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기운을 조절하는 침도 꼭 필요합니다. 운이 좋게도 제 옆에는 침에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고마운 동생이 있습니다. 나이는 적어 동생이지만 침과 한의학 전반에 대한 실력은 너무나 뛰어나, 마음속에선 스승이라고 여기고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한약처방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남들은 한 명의 스승을 모시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일곱 분의 선생님과 처방공부를 했습니다. 그냥 강의를 들은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지료실에서 직접 참관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처방과 선생님의 처방이 다르면 환자에게 몰래 전화를 해 처방이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이건 내가 남에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라며 가르쳐 주신 분도 있고, “황군은 임상에서 이런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욕심이 세상을 해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모두 다 고치겠다는 욕심이 이제는 하나 둘 열매를 맺어 남들이 고치기 힘들다는 병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여러가지 노하우 하나만 가지고도 특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지금도 우리 몸 전체를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자존심도 강합니다. 한의사로서의 자존심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데 한의사나 양의사의 자존심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병을 고쳐야 합니다. 환자의 아픔을 덜어줘야 합니다. 한방치료 보다 양방이 잘 치료한다면 당연히 그 방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유방암 초기의 환자가 자연치유를 원한다고 뜸치료를 받으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신문사 사장을 하시는 선배가 저희 한의원을 소개해줬다고 하시더군요. 상황을 들어보니 아주 초기여서 유방암 수술을 하면 간단히 치료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수술을 하시라고 했더니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몸에 부담이 없는 자연요법으로 치료하러 왔는데 한의사가 수술을 권하니 이상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도 수술을 권했습니다. 몸의 면역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 보다는 수술로 완치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의사 입장에서 양방의 수술과 항생제는 참 부럽습니다. 하지만 현재 양방의 한계도 너무 잘 압니다. 양방에 몸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약들도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당연히 없습니다.
한의학은 몸의 기능을 활성화시켜주는 기능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능을 올려주면 별별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치매나 파킨슨씨 병의 증상도 좋아지고, 나빠지는 속도만 늦추는 게 목표인 COPD도 좋아지는 걸 수 없이 보고 있습니다. 죽어버린 뇌세포나 폐세포를 살리는 건 아닙니다. 기능이 떨어진 세포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줬기 때문입니다. 복수가 꽉차서 간이식 외에 방법이 없는 환자를 정상화시킨 것도 몸 전체의 기능을 올리는 치료였습니다.
만성화된 질환엔 한방이 양방보다 뛰어나다고 확신합니다. 3주 이상된 감기부터 몇 년이상 계속되는 불면 기침 두통 소화불량 등은 몸의 기능을 개선시켜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저는 몸을 고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몸의 자생력을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의 회복력은 경이롭습니다. 저는 환자의 회복력을 되살려 주는 것이 의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